
단골 카페 브랜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봤습니다 (오후세시)
사장님의 "간판이 좀 촌스럽죠?" 한마디로 시작해서 로고, 컬러, 패키지까지 갔습니다.
자랑 포인트
- 반쪽 해 심볼·워드마크·시그니처를 작은 컵에서도 안 뭉개지게 단순한 벡터로 직접 그렸어요
- 크림 베이지+선셋 코럴 6색 팔레트와 한글·한자·영문 타이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리했습니다
- 같은 규칙을 원두백·테이크아웃 컵 패키지까지 적용해 어디서나 한 목소리로 읽히게 했어요
자주 가는 동네 카페가 있는데, 어느 날 사장님이 지나가듯 "우리 간판 좀 촌스럽죠?" 하시더라고요. 빈말로 아니에요 했지만 사실 좀 그랬습니다ㅋㅋ 그래서 조심스럽게 제안을 드렸어요. 제가 한번 만들어봐도 되냐고. 그렇게 시작한 게 로고부터 컬러, 패키지까지 가버린 '오후세시' 브랜딩 작업입니다. 아래 세 장이 실제 결과물이에요 (벡터로 그려서 1080×1350으로 렌더했습니다).
제일 먼저 한 건 그리기가 아니라 듣기였습니다. 왜 이름이 오후세시인지, 어떤 손님이 오는지,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. 사장님 입에서 "나른한 오후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"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, 아 됐다 싶었어요. 방향이 그때 다 정해졌습니다.

로고는 오른쪽으로만 퍼지는 반쪽 해입니다. 오후 세 시의 햇살이 창으로 비껴 들어오는 그 각도요. 처음 시안은 디테일이 훨씬 많았는데, 지름 3cm 테이크아웃 컵 뚜껑 크기로 줄여보니 다 뭉개지더라고요. 그래서 덜어내고 또 덜어냈습니다. 아주 작게 찍혀도 반쪽 해로 읽히는 선까지만 남긴 게 지금 버전이에요.

컬러는 크림 베이지 바탕에 선셋 코럴 포인트. 인쇄물이랑 화면에서 같은 느낌이 나야 해서 6색 팔레트로 정리하고, 한글·영문 타입 스케일도 한 장에 묶었습니다.

같은 규칙을 원두백과 테이크아웃 컵에 그대로 얹었습니다. 어디에 놓여도 한 목소리로 읽히는 것, 그게 목표였어요.
작업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, 브랜딩은 예쁜 로고를 뽑는 일이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일이라는 겁니다. 색은 어떤 비율로 쓰고, 제목엔 무슨 서체를 쓰고, 사진 톤은 어떻게 맞추고. 이 규칙이 있어야 나중에 사장님이 메뉴판을 직접 만들어도 브랜드가 안 흐트러져요. 실은 그게 진짜 목표였습니다. 제가 평생 옆에서 만들어드릴 수는 없으니까요.
지금 그 카페에 가면 제가 만든 컵에 커피가 나옵니다. 이 기분은 해본 사람만 압니다. 계산대 앞에서 매번 남몰래 뿌듯해하고 있어요. 언젠가 2호점이 생겨도 이 규칙 하나로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, 작은 카페 하나에 과하게 진심이었던 이 작업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.
덧붙이면, 작업비는 커피 무한 리필로 퉁쳤습니다. 지인 작업의 국룰이죠. 대신 포트폴리오로 쓰는 건 흔쾌히 허락받았고요. 돈으로 환산하면 손해일지 몰라도, 내 디자인이 매일 손님 손에 들려 나가는 걸 보는 경험은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삽니다. 브랜딩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주변 작은 가게부터 도와드려 보세요. 책 열 권보다 그 한 번이 많이 가르쳐줍니다.
참, 위 이미지들은 실제 납품본을 소셜용 비율로 다시 렌더한 겁니다. 원본은 인쇄용 벡터라 그대로 올리면 깨져 보여서요. 작업 과정 중에 궁금한 게 있으면 댓글로 물어봐 주세요. 아는 선에서 다 답해드리겠습니다.